조선시대 후기
서민 가족의 삶을 그린
<자리 짜기>
Q. 조선시대에서의 자리란? 자리짜기 뜻
A. 조선시대에 자리는 생활필수품. 지금은 쇼파와 의자를 많이 사용하고 있지만 조선시대에는 바닥에 앉아 생활을 하였기때문에 그만큼 자리를 많이 사용했었음
작품해석
▶ 사방관(四方冠)을 쓴 양반이 자리를 짜는 모습을 그림
* 사방관은 조선 시대 사대부들이 평상시에도 예를 갖추기 위해 집안에서 썼던 관모 → 즉 이 그림속 남자는 양반 신분이라는 것을 알 수 있음
* 조선시대 양반들은 대부분 육체적 노동을 기피하였지만, 조선 후기에 들어 경제적 능력을 갖추지 못한 양반들이 속출하면서 일하는 양반들이 생겨남 → 자리를 짜는 양반도 이 자리를 판매 목적으로 만드는 것이고, 자리를 짜는데 생계가 달려있음을 추측 할 수 있음
* 가난한 양반이나, 양반으로서의 마지막 자존심을 지키기 위해 여전히 사방관을 쓰고있는 것
▶ 한 공간속에서 각자 육체노동과 지식노동 중 (아버지는 자리를 짜고, 어머니는 물레를 돌려 실을 뽑고, 부모님이 일하는 가운데 아이는 공부 중임) → 조선시대 교육열을 보여주는 장면
▶ 공부 중인 아이
* 큰 책을 펴 놓고, 작은 막대기로 글자를 하나하나 짚어가며 읽고있음 → 이제 막 글자 공부를 시작한 어린 아이
* 아랫도리를 벗고있음 →가난때문에 벗고있을 것으로 추측가능
→ 발가벗은 아이의 독서는 아직 양반의 길에 대한 미련이 남아있는것
시대적 배경
김홍도의 <자리짜기>를 통해 양반이라는 체면에도 불구하고 열심히 일을 하여 아이를 뒷바라지하는 그림 속 부모의 모습에서 관직에 나가지 못하거나, 경제적 능력을 갖추지 못하면, 노동을 통해 생계를 이어가야 했던 조선 후기의 가난한 양반들의 사정을 알 수 있다.
토지와 노비가 없는 양반들은 노동을 통해 스스로 돈을 벌어야 했지만, 대부분은 육체적 노동을 기피했고, 장사를 해서 돈을 버는 것도 천한 일이라 여겨 하지 않았음
그래서 양반들이 호구지책으로 찾아낸 것이 자리 짜기였던 것으로 보이는데, 자리를 짜는 일은 실내에서 이루어지기 때문에 양반의 체면을 유지하면서도 돈을 벌 수 있는 일이었기 때문이다.
조선 후기에 문장으로 이름이 났던 김낙행(1708~1766)의 문집인 『구사당집(九思堂集)』에는 자신이 부인의 종용에 따라 자리 짜는 일을 하게 되었는데, 처음에는 서툴렀지만 마침내 자리 짜는 일을 좋아하게 되었고, 이 일을 하다가 일생을 마치게 되더라도 분수에 맞는 일이니 괜찮겠다고 쓴 「직석설(織席設)」이란 제목의 글이 실려 있다. 이 글에는 관직에 나가지 못한 가난한 선비의 삶이 잘 드러나 있음
시골 사람들의 농담에 이르기를 “시골 선비가 젊어서는 과거 문장을 익히다가 과거에 합격하지 못하면 풍월(風月)을 일삼고, 또 조금 늙으면 자리 짜는 일을 하다가 마침내 늙어 죽는다.”라고 하니, 이는 대개 천시하고 모욕하는 말이다. 선비다운 바른 풍모에서 멀어지고 품격에 손상됨은 자리 짜는 일이 가장 심하다. (···)
사람이 이렇게 일생을 마친다면 참으로 서글퍼할 만하다. 그러나 또한 그 분수를 따랐을 뿐이니, 느닷없이 비난하고 비웃을 일만은 아니다. (···)
이 일을 하여 나에게 보탬이 되는 것은 다섯 가지이다. 일없이 밥만 축내지 않음이 첫 번째이다. 쓸데없는 출입을 줄임이 두 번째이다. 한더위에 무덥고 땀 흘리는 것을 잊고, 대낮에 곤히 잠자지 않음이 세 번째이다. 마음은 근심 걱정에 묻혀 있지 않고, 말은 지리하게 늘어놓을 겨를이 없음이 네 번째이다. 완성이 되면, 정밀하게 짠 것은 늙으신 어머니를 편안하게 해드리고 거칠게 짠 것은 내 몸과 처자식에게 깔아 주며, 어린 계집종들도 맨바닥에서 자는 것을 면하게 해 주고 남은 것은 나처럼 빈궁한 사람에게 나누어 줄 수 있음이 다섯 번째이다.
- 김낙행, 직석설」, 『구사당집 』 8권, 한국고전번역종합